지금 듣건대 원(元)나라 조정에서는 종전(種田)군인을 파견한다 하는데 이 일은 감히 어길만한 말이 없겠으나 소국(小國 : 즉 우리나라)의 저축은 육지로 나올때 모두 도적에게 약탈되었고 또한 원나라 장수(王帥)를 먹임으로 인하여 모두 없어져서 여분이 없고 때에 주둔군마(軍馬)의 물자를 국내의 민가에게 매호마다 거두기가 매우 어려운 터에 만일 종전군(種田軍)을 설치하여 그들이 또 오게 된다면 이미 농사지을 양식이 곤궁한 때에 그 종작곡식을 또 어느 곳에서 구해오며 또 농우(農牛)는 본래 기르지 않았고 더구나 성(城)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기르지 않았으므로 마땅히 외읍(外邑)에서 구해야 하겠으나 소국(小國)의 충청 전라도는 지금 도적을 토벌하기에 곤란하므로 징발수용이 마땅치 않고 오직 경상도에서 조금 구할 수 있으나 또한 많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치는 일은 변통키가 어려을 뿐 아니라 지금 농민도 굶주릴까 염려되므로 장차 세자(世子)로 하여금 국사를 맡게 하고 무릇 소국(小國)의 정상(情狀)을 붓으로는 모두 이르지 못하겠기에 三월이 되면 몸소 말을 달려가서 모든 일을 알리겠으니 오직 천한 몸의 진정을 불쌍히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려사 世家篇 〔譯者註〕 당시 몽고군(元)으로 三別抄의 본진인 진도에 주둔한 자가 무릇 六천명이요, 말은 무려一만八천필이였고 여기에 다시 봉주둔전(屯田)에서 사용하는 농우 역시 五~六천여필이였다. 그런데 여기에 필요한 군량을 모두 고려에서 충당케 되어 민생이 도탄에 빠졌으므로 둔전폐지를 몽고에 진정하게 된 것이다. 때는 고려 元宗十二年九월이었다.